|
[보라매칼럼] 기술형입찰 물가변동 기준, 현실에 맞게 고치자
대한전문건설신문 | 2026-10-26 11:56:49
[보라매칼럼] 기술형입찰 물가변동 기준, 현실에 맞게 고치자
대형 국책사업의 성패는 한 지점에서 판가름 난다. 예상치 못한 위험을 누가 감당하느냐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사업은 예외 없이 유찰과 지연, 분쟁으로 비용을 치렀다. 최근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를 계기로 건설업계에서 기술형입찰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정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전반의 문제라는 얘기다.
기술형입찰은 본래 합리적인 관점에서 출발했다.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가 아니라 가장 우수한 기술을 내놓은 업체에 고난도 공사를 맡기자는 것이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한 컨소시엄이 책임지니 공기를 줄이고 품질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공사비와 물가를 다루는 계약 제도가 이런 취지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은 ‘시간’이다. 기술형입찰은 공고가 나고 실제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 걸린다. 설계를 다듬고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사비가 계약 시점이 아니라 공고 당시의 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국가계약법은 유찰 후 수의계약으로 넘어간 사업의 물가변동을 계약체결일부터 따지도록 했다. 가격을 정한 시점과 계약을 하는 시점 사이에 오른 비용은 법의 시야 밖에 놓인다. 제도가 스스로 만든 긴 공백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가덕도신공항은 이 공백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다. 입찰공고 이후 중동 전쟁이 터지면서 유류비와 철근, 화학자재 가격이 일제히 뛰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건설공사비지수를 보면, 교통시설 건설 부문은 올해 2월 133.92에서 8월 141.63으로 6개월 만에 6% 가까이 상승했다. 10조원대 사업에서 원가가 몇 퍼센트만 움직여도 수천억 원이 오간다. 그런데 현행 규정으로는 이 상승분을 반영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해법은 이미 있다. 지방계약법은 지난해 개정을 통해 기술형입찰이 일정 기간 이상 지나 수의계약으로 전환되고 물가가 일정 수준 이상 변하면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게 했다. 똑같은 방식의 공사가 지방자치단체 발주냐, 국가 발주냐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다. 국가가 지방보다 뒤처진 기준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위험을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구조는 결국 부메랑이 된다.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 보이면 업체는 입찰 자체를 꺼리게 되고, 유찰이 반복되면 경쟁은 사라진다. 경쟁이 사라진 자리에 ‘기술 경쟁’이 남아 있을 리 없다. 특히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지역 건설사에는 급격한 원가 상승이 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는 국책사업이라면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할 대목이다.
개선 방향은 분명하다. 우선 국가계약법 시행령의 물가변동 기준일을 손봐야 한다. 기술형입찰이 유찰돼 수의계약으로 전환되더라도 계약 체결일이 아니라 가격이 정해진 최초 입찰 시점부터 물가 상승분을 반영할 수 있도록 지방계약법과 기준을 맞춰야 한다. 나아가 깊은 연약지반, 해상 기상처럼 시공사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은 발주처가 함께 지는 원칙을 계약 구조에 담아야 한다.
건설사에 특혜를 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술형입찰은 고난도 공사를 기술로 풀겠다는 제도다. 다만 적정한 공사비 없이 좋은 공사는 없다. 정부가 정말 국책사업을 제때 완수하고 싶다면, 공사비라는 기본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손동우 매일경제신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