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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공지] [논단] 아파트 외양, 강남색 탈피 ‘지역고유의 색’을 찾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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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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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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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아파트 외양, 강남색 탈피 ‘지역고유의 색’을 찾자
대한민국 도시 경관은 아파트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지배적 주거 형태는 도시 공간의 크기, 도시 특성과 관계없이 어디든 우뚝 버티고 있다. 산자락, 바닷가, 도심 한복판, 농촌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외양과 높이를 한 아파트가 동네를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거주지 풍경의 표준화 내지 동질화 정도는 어떤 사회보다 심하다. 심지어 유사한 아파트 이름으로까지 몰아가는 모습에 이르면 아파트 전체주의라는 오명까지 떠올릴 정도다.
아파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동질화에서 새로운 경향이 툭 하고 불거지고 있다 한다. 흔히 도장이라고 부르는 아파트 외양의 색칠에서 베끼기가 성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른바 ‘강남색’이라 일컫는 색이 아파트 외양을 지배한단다.
‘강남색’은 채도를 낮춘 웜 그레이, 베이지, 그리고 하부의 짙은 그래파이트 톤으로 구성된다.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 단지가 선택한 이 색깔 조합이 전국 아파트의 색칠 현장에서 중요 기준이 된다고 한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지방 중소도시의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강남의 색 스펙이 색상 선택의 기준이 되는 모양이다.
비슷한 모양을 한 아파트가 도시 풍경을 주도한 것도 모자라 건물 옷의 색깔마저 동질화되는 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다양성은 사라지고 건물 전체주의가 강화되는 재앙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다. 서울 한복판의 고층 빌딩 숲과 남해안 바닷가의 햇살, 강원도 산자락의 계절감은 각기 전혀 다른 빛과 풍경을 품고 있다. 그래서 과거 집들은 자신이 발붙인 지역 풍경에 맞춘 나름의 향색을 지니고 있었다. ‘강남색’을 전국적으로 선택해 칠하는 사건은 향색을 지우는 일임은 물론 우리 대부분이 강남 신화의 담지자인 동시에 추종자임을 고백하는 일이기도 하다.
동네 간 구별조차 사라진 획일화는 길게 보아 우리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공간의 다양성이 사라진 도시는 주민들의 미학적 감수성을 빈곤하게 만든다. 매일 똑같은 색의 벽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 마음속에 개성과 색다른 창의성의 싹이 자라길 바라는 일은 억지에 가깝다. 자산 가치를 높이려는 욕망으로 도시 외양을 개성 없게 만드는 일은 거주 공간에 대한 애착 대신 강남 물신주의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자해에 가깝다. 삶의 공간이 지녀야 할 고유한 삶의 온기와 장소성이 ‘강남 표절’ 속에서 휘발시키는 우둔한 짓이다. 내가 사는 곳의 환경을 돌아보지 않게 만들어 정체성조차 갖지 못하게 하는 심리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강남색’만이 제 살 곳의 품격을 보장하진 않는다.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지역의 풍광과 호흡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본받을 만한 사례도 있다. 제주의일부 주거 단지는 현무암, 귤색, 바다의 푸른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색채 가이드라인에 맞춰 지역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울러 고급스러운 고유의 정체성까지 확보하고 있다. 베네치아 부라노섬처럼 지역의 빛과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색채를 가꿔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 세계적인 공간 자산으로 탈바꿈시킨 예도 있다.
각급 지자체는 아파트의 도장과 향토의 색감 형성에 관한 책무를 지고 있다. 아울러 색감 선택과 관련해 주민들의 동의 구하기에 일정 부분 개입할 여지를 지니고 있다. 주민의 동의 비율만으로 획일적 도장안을 통과시키는 관행적인 경관 심의 행정에서 벗어나 동네 색감 형성에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지역 고유의 자연·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다채로운 색채 계획을 설계하고 제안하는 주체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 설계와 제안에 응하는 단지에는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적극성으로 경관 다양화를 유도하는 일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강남색’이 아닌 제 동네 색 혹은 다양한 색 동네를 챙겨내기에 힘쓰는 일에 주저하지 말 일이다.
아파트라는 획일적 환경 속에서 외벽의 색채만큼이라도 도시와 동네에 숨 쉴 틈을 주는 다채로운 창이 돼야 한다. ‘강남색’은 강남에 돌려주고 제 색을 찾아 향색으로 뽐내고 그로써 강남을 향한 욕망을 감량할 일이다. ‘강남색’이라는 거만한 이름의 존재에도 딴지를 걸어야 한다. 제 주민이 사는 공간의 색깔조차도 베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관련 지자체는 어떤 존재로 기억될까.
색깔 있는 미관 행정도 깊게 고민해보길 힘줘 권한다. /원용진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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